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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의 기원은 인간의 원시 시대에서 자연 방어의 동작을 발전 시킨것으로 지금에는 과학적이고 체적적으로 발전 되여 온것이다. 무기가 없던 시대에서는 손과 발그리고 몸으로 또 나아 가서는 나무로 자기 방어를 추고 해오던 인간이 석기 시대에서는 돌과 돌로 진화된 무기로, 청동기시대에서는 쇠로 만들어진 무기로 자기 방어와 사냥을 하는 기구로 발전 되여 왔다. 옛 한국의 역사를 보면 고구려 (37BC~668AD) 국기, 싸울아비, 씨름 고구려의 창시를 한 동명왕 (37BC~19AD) 광개토왕 (374~413) 광개토왕 당시 386년 중국의 절반을 점령을 하고 412년까지 다스려왔다.
백제 (18BC~660AD) 국기, 수사도 주로 봉을 위주로한 무술, 창술등..
신라 (15BC~935) 화랑 (668~935) 화랑들이 수련했던 무술은 빈손으로 하는 수박기 그리고 무기를 다루는 화랑 무사들이 쓰는 무술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본국검이라는 검술이 있는데 이 검술은 무예 도보 통지에 본국검으로 수록 되여있다. 또한 신라검 또는 신검으로 칭하기도 한다. 무예 도보 통지에 보면 본국검은 허리에 차는 요도로 하는 검술이다. 요도의 무게는 약 1.KG이며, 검무를 출 할때에는 한손으로 자루를 잡고 사용을 하지만, 실전에서는 자루를 두손으로 잡고 사용을 한다. 검법은 안법, 격법, 세법, 자법이 있다. 본국검의 동작은 32로 되여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보군의 관무재초시 시험과목으로 시행 되어 실용되던 검술이다. 나중에는 조선시대 때에 십팔기에 일부분으로 전해 내려 왔다. 국기, 수박기 지금의 태권도, 합기도, 무사술 활과 검을 위주로한 무술
고려 (918~1392) 국기, 십팔기
조선 (1392~1910) 국기, 십팔기 일정치하 (1910~1945) 없음.
이 시대에 많은 새로운 무술이 탄생 되였다. 일본 무술의 역사 사무라이, 고구려의 싸울아비에서 유래된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검술이 일본에서 다시 일본검으로 태여 났다 닌자수, 신라 시대의 화랑의 수련 한 본국검및 무사술에서 유래 된것으로 보임. 가라데, 한국명 공수도는 한국의 수박기 무술인이 였던 최 용의(마스오야마)가 창시 하였으며, 수박기를 수술과 족술을 그의 몸구조에 맞게 만드어 무술을 발전 시키다 보니 공수도를 만들게 되였다. 아끼도, 한국의 합기도는 일본의 아끼도의 창시자 유시바가 한국의 수박기의 수기를 따로 정맆을 하여 합기도 (아끼도를 한자로 표기 하면 합기도가 됩) 라 칭하고 나중에 대구에 최용술로 인하여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오끼나와 가라데, 이 무술은 오끼나와의 지형적 영향으로 중구과 무역이 활발한 곳으로 중국의 무술을 따와서 그나름데로 발전 시킨 것이다. 유술, 유도(주도) 는 한국의 쓰모에서 비롯 되였으며, 그 기술을 크게 둘로 나눠서 몸이 작은 사람이 쓸수 있는 기술과 몸이 큰 사람이 쓸 수 있는 기술로 나누어 발전을 시켰다. 따라서 몸이 작은 사람이 쓸수 있는 기술을 유술로 칭하고 몸이 큰사람이 쓸 수 있는 기술을 쓰모로 칭하여 오늘까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쓰모, 한국의 씨름에서 유래됨
현대 시대의 한국 태권도, 한국의 국기. 한국의 태권도는 한국 동란 이후에 군대에 몸을 담고 있던 최 홍희장군(소장)에 의하여 십팔기(수박기)서 족술과 수술을 모아서 만들었다. 무사술, 송경식에 의하여 십팔기(수박기)의 무기술을 따로 정맆하여 만들었다.
소림권의 역사 (History of Shaolin Chuan)
서기 496년 중국에 숭산에 소림사가 창건하고 527년 불교 선종 28대 종정인 보리 달마가 중국 광동 그리고 장강을 거쳐 이른바 면벽 9년의 고행끝에 득도를 하고 참선중 운동 부족으로 건강을 잃어 가는 승려들을 위해서 그가 늘 수련하던 역근경이라는 일종에 요가 운동을 승려들에게 보급을 하면서 소림권의 권법이 시작이 된것이다. 보리 달마는 숭산에 은거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불교의 수련이 수련중 앉자서 수련하는 것에 편중되어 있어 오랫동안 앉아서 수련하면 바로 일어서서 걸을 수가 없고 다리가 약해지는 폐단이 있다. 따라서 그는 필히 무공을 익혀야만 비로서 건강장수할 수 있고 몸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승려들에게 전수 하기 시작 했다.
당나라 시대(618~907)에는 안휘성 흡주 사람인 허선평과 강남 안경 사람인 이도자가 있었다. 허선평은 도학가이며 시인으로서 당나라의 대 시인 이백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는 태극공(太極功)이라는 권법을 수련하였는데, 그의 태극공 권법은 37식 또는 장권이라고도 불리었다. 허선평은 그가 수련한 태극공 (장권)을 유일하게 송씨 성을 가진 가족에게 전수해 주었다고 그에 관한 저서들에 나와 있다. 그후
송씨 가문으로 14~5대에 송씨 가문에 의하여 전수 되여와서, 명나라 시대의 송원교에게까지 이르렀다. 때에 이르러 태극권을 받아 드려 명실 공이 외가 권법과 내가 권법의 종합 무술(우슈)로 태여 났다.
북권 (장권)-----------소림, 화권, 사권 남권--------------광동 남권 외가 권법=홍가권, 이가권, 오가권, 영춘권, 오조권, 탕랑권, 호학 쌍형권,통배권, 변자권, 착각권, 지당권, 내가 권법=형의권, 팔괘장, 팔극권, 태극권, 상형권,
소림권의 원리 소림권이라는 것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로서 빠르고 강한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무술로서, 강인한 체력과 빠른 동작으로 그러면서도 움직임은 부드럽고 유연함으로 대응하며 동작 하나 하나가 짜임세가 있고 기계적인 맞춤으로 복잡한 무술의 동작을 알기 쉽게 만들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모든 무술이 그렇듯이 소림권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기를 이해하여야 한다. 태극권은 우리의 몸의 ("기"라는 것은 한마디로 살아있는 생체에너지로서 이 우주만물이 기 아닌것이 없고 모든 생명현상의 근원을 이룬다. 인간도 이 기에의해 태어나고 활동하며 생노병사가 모두 기의 운화에 따라 이루어진다.) 정(精) ·기(氣) ·신(神)의 조화를 이루며 기의 순환을 북돋아서 유연하고 건강하게 하며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하여 무병장수로 이끌어 주게 된다.
소림권의 단전 호흡 기발전의 사방점 1.2.하단전 호흡 석문과 명문 기의 기점 (기를 생성하는 곳의 중추) 아랫 배를 이용하여 기를 발전 시킨다. 3. 중단전 호흡 단중 조점 (기를 생성 보조 기관) 횡경막을 휼련 하여 기를 발전 시킨다. 4. 상단전 호흡 인당 조점 (기를 생성 보조 기관) 정신통일로 기를 모은다.
기 발산의 사방점 1.2.노궁은 기의 발산 점 (장풍 및 장 공격의 요처) 3.4. 천궁 기의 발산점 (발차기 공격의 요처)
백회는 장강은 기의 생성과 발산의 조정 기관
太極拳의 歷史 (History of Tai-Chi Chuan)
태극권은 장삼봉 진인이 역경의 음양오행설과 황제내경소문의 동양의학 , 노자의 철학사상 등에 기공 및 양생도인법 , 호신술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집대성한 것으로 정(精) , 기(氣) , 신(神)의 내면적인 수련을 중시하는 내가권법이다. 따라서 태극권은 음양 오행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음양의 태극(Supreme Ultimate)이란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근본원리로서 음(yin)과 양(yang)의 조화를 의미하며 태극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고 이것이 다시, 사방 도법, 팔방도법(팔괘) 삼라만상으로 갈라지는 것을 가르켜서 말하는 것이다. 태극권은 이러한 원리에 근거하여 우주자연의 근본적 에너지인 "기(Ki, Chi or Qi)"를 승화 시켜 우리의 생명의 에너지로 극대화 하는 운공법 이다. 장삼봉 진인은 송나라말 (1277) 중국 요동 의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마음이 담담하고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태극권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전 태극권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장삼풍"(Zhang San-feng)이라는 사람이 호북성의 무당산(Mt.Wudang)에 은거하면서 선인으로부터 태극권의 원리를 터득하여 완성 시켯다. 장삼봉 진인은 원나라시대에 부모님을 여의고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수행하다가 섬서 화산에서 화룡진인을 만나 양생장수의 도와 신체운동을 배우게 된것이다. 그리고 태극권 의 문주인 장삼봉은
문하에 일곱명의 수제자를 두었으며 그중에 송원교를 장문으로 태극권을 이여 나아 가도록 하였다. 무당산으로 찾아가서 장삼봉 진인에게 태극권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다.
무술의 창시자는 문주라 칭하고, 그의 순수한 정통 혈통을 이여나갈 제자를 수제자중에 한사람을 골라서 지정을 하는데 이것을 장문이라고 칭한다. 왜냐하면, 여러명의 수제자를 양성하다 보면 다 제각기 무술을 이해하는 것이 다름으로 나중에 바뀔수가 있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한사람을 지정하여 순수 혈통을 전승 한다.
따라서, 송원교를 순수혈통의 계승자 즉 장문으로 정하고, 나중에는 일곱명의 수제가들이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태극권의 이해를 발전 시켜나갔다. 그 이유로 명나라에 들어와 태극권은 남파 태극권과 북파 태극권의 양파로 나누어 지게 되었다. 남파 태극권의 원주인 건곤파의 송원교의 가전으로 지금 까지 내려 왔다. 일부에서는 남파가 실전 된것으로 생각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건곤파의 송원교의 남파 태극권은 가족중에서도 일족 이외에는 함부로 전수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북파 태극권은 진(陳)씨 일가들이 모여사는 진가구(陳家溝)에 전해져 '陳家태극권'으로 계승되었다.
송원교는 (1288~1370) 의 저서<송씨태극공원류지파론>를 남겼고 그의 저서에 장삼풍에 지도 받았던 설도 나와 있다.
화룡진인은 송나라 (960~1277) 시대에 진박노조(陳博老祖)라는 태극학설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 있었다. 바로 당시의 명인(名人)이었던 이정(二程), 주희(朱熹) 등과 함께 태극도설(太極圖設)을 써서 남긴 진희이(陳希夷)이다. 진희이는 양생장수의 도와 신체운동을 화룡진인(火龍眞人)에게 전수하였는데, 이 화룡진인이 바로 장삼봉 진인의 스승이다. 화룡진인은 도사로서 많은 저서에 그이름이 나온다.
도사란! 무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불류가 되는데, 도사는 평생동안 산에서 수련하고 산에서 사는 사람을 지칭을 하는것이고 도인은 산에서 수련을 하대, 나중에는 하산을 하여 수련생들을 수련 시킨사람을 가르치는 말이고, 문하생과 수련생의 차이는, 문하생은 산에 도사에게 가서 도를 닦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고, 수련생은 일반인들을 가르키는 말이다.
북파 태극권에 가장 중요한 엮활을 한 무술인들은, 명나라말 무장 - 진왕정, 왕종악 이다. 진왕정이 기효신서(중국의 병법서)의 권법에 황정경(도교경전)의 원리를 합쳐서 태극권을 창시한 것으로 생각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왕정 (하남성진가구진씨 9世) 진장흥 (1771∼1853) 이 진장흥의 제자가 바로 양식 태극권의 창시자인 "양로선"이다. 또한 명나라(1368~1644)시대 섬서(陝西)에는 왕종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태극권론> <행공심해> <심삼세가> 등을 써서 남긴 왕종악이다. 이 시대에는 태극권이 남, 북 양파로 형성되어 전수되었다.
태극권의 원리 태극권이라는 것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로서 빠르고 강한 상대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무술이라고 인식한 장삼풍은 태극권의 4가지 기본원리, 즉 움직임에 대해서는 고요함으로 대응하고 굳고 강함에 대해서는 부드럽고 유연함으로 대응하며 빠름에 대해서는 느림으로서 대응하고 복잡함에 대해서는 단순함으로 대응한다는 원리이다. 태극권의 대표적인 동작원리는 원형과 나선의 동작이다. 여기에 몸은 이완시키고 느긋하게 동작하지만 의식은 뚜렷히 집중하여 동작하나의 세밀한 부위까지 느껴야 하는 송과 정의 원리가 결합되어야 한다. 태극권의 유연한 움직임은 온몸이 느슨하게 이완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펴고 구부리고 뒤틀어 기혈의 유통을 도와주고 끊임이 없이 이어지는 동작들은 완벽하게 호흡과 일치하여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가 있다.
태극권의 기본 자세 앞에서 말한 것을 종합해보면 태극권은 의식, 호흡, 동작 세가지가 밀접히 결합한 일종의 정체 활동으로 호흡은 그 중요한 조 성 요소이며 , 동작은 호흡과 결합하여야 한다.
1. 조신(調身) : 바른자세 태극권의 바른 자세. 머리, 목, 척추가 항상 일직선이 되게 하여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허리는 모든 운동의 주축이 되므로 항상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하고, 하체는 정지해 있을 때는 뿌리가 내리듯이 자세를 잡는다. 2. 조식(調息) : 자연스러운 호흡 호흡은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하고 단정한 마음으로 행한다. 숨을 들이 쉴 때는 코로 쉬는 내 쉴때는 입으로 아니면 코로 각 동작에 맞추어 행한다. 3. 조심(調心) :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마음 태극권은 무심의 경지로 유동 명상이라고 지칭하며 욺직이는 명상으로 모든 잡념을 없이 동작을 행해야 한다.
連綿圓合(연면원합)
(一動無有不動)고 했는데, 이는 손끝 하나의 움직임에도 온몸의 모든 부분이 협조
일치하여 전신적(全身的)인 힘을 발휘하는 태극권의 연관성을 말한 것이다.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태극권은 흔히 '솜과 같이 부드러운 권법' 즉 면권(綿拳)이라 했다.
이상의 사실로 태극권은 전형적인 外柔內剛의 內家拳이다. 자연스러운 힘이 발휘되도록 하고 조직의 강화가 쉽게 이루어지게 한다. 또한 원운동은 직선보다 매우 아름답게 표현된다. 외삼합은 손발의 합 팔꿈치와 무릎의 합, 어깨와 사타구니의 합을 뜻한다.
5 호흡 호흡의 중요성에 대해서 고인들은 일찍부터 인식이 있었다.《황제내경》에 이것과 관련된 기록이 있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수 식정좌의 정양을 위주로 한 신체단련의 방법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동작과 의식, 호흡이 결합된 활동의 신체단련의 방법을 창 조하였다. 이 방면에 지금까지 전해오는 단련방법을 살펴보면 대체로 이 몇 단계를 묘사했으며 최초의 導引術에 서 五禽戱 , 易 筋經, 峨嵋十二 등까지 발전하여 점차 태극권까지 향상되었다. 태극권은 이미 상당히 고급의 動中有靜의 고급단계까지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태극권이 內家拳이라 칭해지는 것은 그 주원인은 무공과 호흡의 밀접한 결합이 편한데 있으며 의식의 작용을 강조 했다. 태극권은 역식호흡법을 채택하여 숨을 들이 쉴 때 복부 뒤쪽 (命門穴)로 들이쉬고 , 내보낼 때 복부는 뒤에서 앞으로 내밀게 된다. 경락이 막히지 않아야 기가 통한다. 만약 온몸이 굳어서 경락이 막히면 기혈이 정체되고 ,움직임이 민첩 하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막약 힘을 사용하지 않고 마음을 사용하면 마음이 미치는 곳에 기도 미친 다. 만약 기혈이 움직여 음양조화가 되고 온몸에 퍼진다. 정체됨이 없고 계속 연습하면 바고 그것이 진정한 內勁이다. 이런 격막( 횡경막)호흡은 그것이 의료 보건에 있어 작용이 매우 크다. 횡경막과 복근의 수축과 팽창은 복압을 끊임없이 변하게 한다. 복압 이 증가할 때 복강과 정맥은 압력의 작용을 받아 혈액이 심방에 들어가고 반대로 복압이 낮을 때 혈액은 복강으로 들어간다. 이 와 같이 호흡운동으로 혈액순환 상황을 개선한다. 이 외에 횡경막의 운동은 간압에 안마의 작용을 할 수 있으며 간압의 정지하여 흐르지 않는 피를 제거하고 간압기능을 개선하는 좋은 방법이다. 태극권호흡은 깊이, 길이, 고름(균등함),조용함을 강조한다. 이 방면에도 기공의 요구와 서로 일치한다. 그러므로 태극권이 활 동할 때에 활동량이 증가하는 것이지 결코 호흡의 숫자에 의해 증가하지 않고 폐활량에 따라 증가하므로 활동시 對氣의 요구에 적응한다. 이것은 호흡기관의 기능을 촉진시키고 건강수준의 향상에 좋은 작용이 있다.
중국 문화혁명(1966~1976) 이당시에 많은 문화제가 소실 되였으며, 목택동에 의하여 태극권이 국민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였다. 목택동은 태극권이 국민 전부 쉽게 할수있도록 짧게 만들라고 명령을 하여 새로운 태극권이 생겨났다.
무술을 무도라고 칭하는 이유는 무술에 도 즉 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무술의 기본인 심신수양은 도에서 창출이 되며, 무술의 근본 골격은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에서 비롯되며, 이 세가지의 무술의 골격을 완성시켜 나아가는 데에는 철학의 공부가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 하겠다.
무술의 기원이 불교의 영향으로 시작되였기에 많은 무술이 종교의 의식이 배여있던것을 전승 종합 무술의 창시자인 송덕순은 종교적 인 개념을 없애고 순수 철학을 접목을 시키기 위해서, 성리학을 접목을 시켯으며, 따라서 전승무술의 기본 골격의 완성은 송시열때 부터라고 생각한다.
노자 (531BC)의
철학과 태극권
노자의 철학이 태극권을 만난 중요 요소는 의식,호흡,동작의 협조를 추구하고 노자의 전기치유(專氣致柔 : 기에 전념해 부드러움에 이름), 이유극강(以柔克强 : 부드러움으로 굳센 것을 이김) 그리고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압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며 연정화기(鍊精化氣) , 연기화신(鍊氣化神) , 연신환허(鍊神還虛)되는 기(技)를 도(道)로 승화시킨 기화지도(氣化之道)이다.
원래의 무로 돌아온다. 이러한 자연 법칙에 따라 태극권의 기는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상대의 변화에 따라 뻗어 나간다. 상대가 강하고 자신이 약할 때는 거스르지 말고 흘려 보내는 것을 주라한다. 자신을 유리한 입장에 두고 상대를 불리한 방향이나 자세에 두는 것을 점이라 한다.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이쪽도 움직인다. 천변 만화해도 그 근원의 도리는 하나이다. 자세를 여러 번 반복해 수련함으로써 비로소 경을 알수 있고 경을 이해함으로써 태극권의 궁극적인 의의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오랜 수련을 거치지 않으면 이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무념무상으로 기를 단전에 모으고 자세를 바르게 하면 상대의 허실을 헤아릴 수 있고 상대 고저의 기를 알 수 있으며 나아가서 상대의 진퇴까지를 알 수 있어 상대의 움직임에 따른 무한한 변화를 구사할 수 있다. 상대가 나를 모르고 내가 상대를 알면 맞설 적이 없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움직임이 흐트러지고 너무 장중하면 움직임이 막힌다. 몇 년을 수련했어도 응용이 막히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양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서 경을 깨닫는다. 경을 알고 태극권을 수련하면 스스로 그 묘미를 터극할 수 있다. 마음을 무의 경지로 만들어 상대가 나오는 방향에 따라야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노자 중국 고대의 철학자·도가(道家)의 창시자. 성 이(李). 자 담(聃). 이름 이(耳).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초(楚)나라 고현(苦縣:河南省鹿邑縣) 출생.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장서실 관리인)였다. 공자(BC 552~479)가 젊었을 때 뤄양[洛陽]으로 노자를 찾아가 예(禮)에 관한 가르침을 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나라의 쇠퇴를 한탄하고 은퇴할 것을 결심한 후 서방(西方)으로 떠났다. 그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上下) 2편의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노자》라고 하며 《도덕경(道德經)》(2권)이라고도 하는데,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전기에는 의문이 많아, 노자의 생존을 공자보다 100년 후로 보는 설이 있는가 하면, 그 실재 자체를 부정하는 설도 있다. 노자는 도(道)의 개념을 철학사상 처음으로 제기하였으며, 이 도는 천지만물뿐만 아니라 상제(上帝)보다도 앞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형상과 소리가 없어서 경험할 수도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無)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지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생성 소멸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무가 아니라 유(有)이다. 천지만물과 달리 도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실체이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자연(自然)’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것도 간섭·지배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무위(無爲)하다고 할 수 있다. 통치자가 만약 이러한 무위자연을 본받아 백성들을 간섭·지배하지 않고 그들의 자발성에 맡긴다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진다. 노자에 의하면 일체 사물·사건들은 그들 자신과 상반하는 대립자들을 지니고 있다. 유(有)가 있으면 무(無)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다. 이들 대립자들은 서로 전화한다. 화는 복이 되고 흥성한 것은 멸망한다. 이러한 대립전화(對立轉化)의 법칙을 알고 유(柔)를 지키면 강(剛)을 이길 수 있다. 이를 귀유(貴柔)사상이라고 한다. 노자사상은 열자(列子)와 장자(莊子)에게 계승되었다고 한다. 한(漢)나라 초기에 성행하였던 황노(黃老)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한고조(漢高祖)는 오랜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파괴된 생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동한(東漢) 말엽에 도교를 창도한 장도릉(張道陵)이 노자를 교조(敎祖)로 추존(追尊)하고 노자오천문(老子五千文)을 신도들이 외우고 익혀야 할 경전으로 받들어 노자사상은 도교의 교리가 되었다. 위진시대(魏晉時代)에 하안(何晏)이 도덕론을 짓고 왕필(王弼)이 노자주(老子注)를 저술함으로써 노자사상은 위진 현학의 기본사상이 되었다. 또한 인도에서 들어온 불경을 해석하는 데 노자의 용어와 이론이 활용되어 격의(格義)불교 형성에 이바지하였다. 한국에서는 상고시대 이래의 신선사상이 삼국시대에 이르러 도가사상과 결합, 풍류를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재난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과의(科儀)도교가 성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산림(山林)을 찾아 신선처럼 살고자 하는 선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노자의 도 "천지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기를 등에 지고 양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음양의 두 기가 서로 작용하여 조화로운 기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노자가 주장하고 있는 도란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의 근원과 법칙임을 알 수 있다. 도는 기(물질)이면서 리(법칙)이다. "이름이 없는 것을 만물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름이 없는 것과 이름이 있는 것은 모두 도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도가 만물을 발생한다고 했을 때 도는 혼성된 물의 존재이다. 그래서 "혼돈 가운데 이루어진 무엇이 있으니 그것은 천지에 앞서 존재한다." 고 하였다. 동시에 도는 만물을 떠나 있는 일종의 절대적 '리'이다. 상도(常道), 즉 영원불변하는 도라 불린다. 영원불변하는 도는 가장 추상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 있으므로 형상이 없다. 그래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하며,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이 세 가지는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뒤섞여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첫째, 도는 이름이 없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그러한 도(常道)가 아니다.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으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노자는 도를 무한한 것으로 어떠한 규정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계가 있는 명칭으로 이름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논어』 에서 발견되고 있는 도란 무엇인가? 노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공자가 강조한 인과 예는 그들이 지어낸 도일 뿐,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도는 참된 도가 무너졌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생각하였다.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오고 지혜가 생겨 큰 거짓말이 있게 되었다. 가까운 친척이 서로 화목하지 않자 효도니 사랑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나오게 되었다." 둘째, 도는 공평무사하다. 노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인격신인 '상제(上帝)'에 대한 관념을 도로 변화시키면서 도의 성질을 객관적인 존재라고 하였다. 도는 인간적인 감정이나 의지가 없고, 인간의 기대나 의지에서 독립하여 존재한다. "천지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 '추구'는 풀로 만든 강아지인데, 제사 때 만들어 쓰고는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다. 이 주장은 도가 인간의 일에 대하여 무정하고 냉담함을 나타내고 있다. 셋째, 도는 허정(虛靜)하다. "도는 텅비어 있으나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 "도는 공허한 것이어서 영원히 충만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도는 또한 고요히 머물러 있다." 만물은 모두 장대하게 생장하지만 최후에는 모두 그것들이 본원인 도로 돌아간다. 이것을 두고 만물이 근원으로 돌아간다라고 하는데 결국 고요히 머물러 있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자의 덕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인간도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이 그 하나를 차지한다. 인간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덕론이란 만물의 본성을 토론하는 것이다. 노자는 우주의 본원인 도가 만물에 깃들여 만물의 본성이 나타났다고 하였다. 만물의 본성은 곧 도의 덕성이다. 노자가 말한 '덕'은 '자연'이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하다', '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도, 욕망도, 행위도 없는 '무위(無爲)라는 뜻이다.
노자의 윤리론 노자는 최고의 인격을 갖춘 성인은 우주의 본원인 도의 덕성을 체현하고 무위자연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주장한 도덕 원칙은 다음과 같다. "덕성을 풍부하게 머금고 있는 자는 마치 처음 태어난 갓난아기와 같다. 갓난아이는 무지하고 무심하므로 독충도 찌르지 않고 맹수도 덤벼들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발톱을 대지 않는다. 뼈는 연약하고 근육은 부드러우나 꽉 움켜쥔 주먹은 단단하다. 하루 종일 울부짖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자연과의 조화가 최고로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었을 때는 단단한 것으로 변한다. 초목도 자랄 때에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었을 때는 마르고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굳세고 강한 것은 죽음에 속하는 무리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에 속하는 무리이다. 따라서 무력이 강하면 오히려 적을 이길 수 없고 , 나무도 억세면 결국 생명을 마치고 만다. 그러니 강하고 큰 것은 결국 아래에 깔리게 마련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로 오르게 마련이다." "도를 잃은 뒤에 덕이 있게 되고, 덕을 잃은 뒤에 인이 있게 되었으며, 인을 잃은 뒤에 의가 있게 되고, 의를 잃은 뒤에 예가 있게 되었다. 예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엷어서 나타난 것이니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재앙의 시작이다. 근거도 없이 하는 억측은 도의 겉치레에 지나지 않으니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따라서 대장부는 돈후함으로 처신하지 경박함으로 처신하지 않으며, 소박하고 진실함으로 처신하지 겉치레로 처신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박함과 겉치레를 버리고 돈후함과 질박함을 취한다." 따라서 그는 성인이라면 겉으로는 비록 남루한 옷을 결쳤을망정 안으로는 아름다운 옥석을 품은 듯하다고 하였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게 큰 이익을 주면서도 자기를 주장하여 다투지 않고, 누구나 싫어하는 낮은 장소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도의 본래 모습에 가깝다." "강이나 바닷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낮은 곳에 잘 처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리어 분명하지 못한 것이며, 자기가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리어 총명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를 뽐내는 것은 도리어 공을 이루지 못한 것이며,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 사람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귀한 것은 천한 것을 뿌리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러니 후왕(侯王)은 스스로를 '외롭고(孤)', '부족하며(寡)', '좋지 못한(不善)' 사람이라 부른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뿌리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최고의 영예는 도리어 영예가 아니다. 옥같이 귀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돌같이 굳세기를 바라지 않느다." 성인은 언제나 자신을 겸손하게 아래에 처한다고 표시하여 영원히 자신의 겸허한 미덕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심과 욕망을 줄여야 한다. "욕심이 많은 것보다 죄악이 큰 것이 없고,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해악이 큰 것이 없으며, 얻겠다는 탐욕보다 죄의 근심이 큰 것은 없다. 만족할 줄 알아 그치는 사람만이 영원히 만족한다." "성인은 사사로이 자신의 것을 쌓아 두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모두 주므로 오히려 자기가 더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모두 주므로 오히려 자기가 더 많게 된다." 노자가 사심이 없음을 사심에 있음에 도달하는 한 가지 수단으로 간주한 것은 아지곧 사심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노자의 도덕 원칙은 결코 '아주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는'그런 것이 아니라, '아주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있는' 그런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노자의 생존 년대는 불확실하지마는 적어도 그에 의하여 대표되는 도가사상은 춘추시대로부터 전국시대에 걸쳐 형성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주나라 왕조의 세력이 약해져서 각 지방제후의 나라들이 서로 멋대로 다투어 무수한 나라가 생겨났다가 무수히 많은 나라들이 망해간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따라서 이 무렵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보려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바로잡을 경륜을 들고나와 자기의 주장을 선전하기에 힘썼다. 후세에 이들을 제자백가라고 부르는데, 거기에는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를 비롯하여 유가·묵가·명가·법가·병가·농가· 음양가 등 수많은 유파들이 있었다. 도 는 만물을 생성하며 변화시키고 있지만 그 작용에는 도가의 사상을
특징지우는 몇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로 노자는 에 이르면 다시 자연히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사물 중에는 무조건 영원히 발전해나가기만 하는 것이란 있을 수가 없다. 생물들은 태어났다 자라서는 늙고 죽음으로써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러한 변화의 단계를
노자는 노자는 사람의 존재도 우주 속의 자연의 한가지 현상으로서 파악한다. 사람도, 봄에 돋아났다 가을에 서드는 풀이나 산에 솟아있는 바윗돌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연의 한 요소라는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사람이 나서 자란 다음 늙고 다시 죽는 것은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도의 변화>소그이 한가지 현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욕망과 평가를 쫓아 자연변화의 도를 어기고 자기의 행복과 안녕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존재가 자연의 한가지 현상에 불과하며, 자기의 욕방이나 가치판단이 모두 헛되고 그릇된 것이을 깨닫지 못한다. 여기에서 사회의 혼란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불행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춘추시대(BC722-BC467)에 발생한 노자의 사상은 전국시대(BC466-BC221)에 이르러 장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와 그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이른바 도가가 형성되었다. 전국시대 말엽에 이르러 도가사상은 유가사상 다음 가는 가장 유력하고도 보편적인 한 학파로 발전한다. 반고의 <한서> 예문지만 보더라도 도가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삼십가가의 수많은 저술들이 재록되어 있다. 이들의 저서를 읽어보면 이들의 사상에는 상당한 차이가 생기기도 하였으나 원칙적으로는 모두 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사람의 내심의 수양을 통하여 인간의 안녕과 행복을 얻으려 한다. 그들은 인위적인 일체의 행위를 반대하며, 그러한 인위에 의하여 발전한 모든 문화제도를 무시한다. 이러한 문화제도는 모두가 허망한 실속없는 것들이어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자는 도가(道家)의 창시자이다. 따라서 그의 저서 <노자>는 후세에 와서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도가의 가장 중요한 경전의 하나이다. 그의 뒤를 이어 장자(莊子)라는 사상가가 나와 도학(道學)을 발전시켰으므로, 도학은 흔히 <노장학(老莊學)> 이라고도 불리어졌고, 도가에 있어서의 노자와 장자는 마치 유가(儒家)에 있어서의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처럼 여겨지고 있다. 도학의 성행으로 말미암아 그 뒤로는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노자>의 주석서들이 나왔다. 근인 마서륜의 <노자핵고> 같은 것은 이 방면 연구의 좋은 참고서라 할 것이다. 마서륜을 비롯한 근래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노자>에는 수많은 판본들이 있지마는 그중의 근본적인 이본은 크게
다음과 같은 네가지라고 할 수 있다. 노자와 공자 노자는 주나라 수도 낙읍에서 몰락해가는 주왕실 서고를 지키는 기록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남아있는 주대의 귀중한 책들을 밤낮으로 접할 수 있었다. 노자는 공자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공자가 익히 알고 있는 예의 규범에 관해서도 노자가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의(葬儀) 때 일식(日食)에 부딫치면 어떻게 하는가? 자식이 죽었을 때 묘소를 가까이 할 것인가 멀리할 것인가? 나라에 상사(喪事)가 있을 때 전쟁을 피할 것이냐 어찌할 것이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죽은 국왕의 위패를 딴 곳으로 옮길 것이냐 그만둘 것이냐? 등등의 문의에 노자는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며 명확하게 답을 주었다. 공자는 낙양에 수일 동안 머물다가 귀로에 올랐다. 노자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전송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듣자하니 사람들이 전송을 할 때,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주고, 돈이 없는 사람은 충고나 격려의 말을 남긴다고 합니다. 나는 돈도 없는 데다 잠시나마 도덕과 학문이 있는 척하고 있으니, 당신께 몇 마디 남기고자 합니다. 첫째, 그대가 옛 성현이라고 우러러보던 이들은 이미 육체와 뼈마저 썩어 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그들이 남긴 헛소리분이외다. 그러니 옛 것을 익히되 새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어 언뜻 봐선 점포가 빈 것 같고 군자는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인다고 했소. 그러니 제발 그 교만과 욕심 그리고 잘난 체하는 병과 잡념을 내버리는 게 좋을 것이오. 이런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오. 내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이외다."
주자학 (성리학) 중국 송나라때에 정맆된 학설로 도학, 이학, 도덕사상을 집대성 한것이 주자학 (성리학) 이다. 성리학은 이, 기, 개념을 구사하면서 우주의 생성과 자연의 이치를 형의학적, 철학, 태극설, 이기설, 심성론 등을
주자학 朱子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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